[삶의 뜨락에서] Doggy Bag
오래전 제가 한국에서 살 때는 음식점에서 먹다가 남은 것을 싸서 간 일이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물론 그때는 음식을 싸갈 그릇도 없었고 음식을 싸갈 준비도 안 되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미국에 처음 와서 여럿이 식당에 갔는데 상당히 깔끔한 선배님이 먹다 남은 스테이크를 싸 달라고 하면서 “Doggy bag. please”라고 하는 것을 듣고 참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선배님은 “미국에서는 남은 음식을 싸달라고 할 때 ‘Doggy bag’이라고 하면서 집의 개에게 갖다 준다고 하지만 집에 가서 내가 먹는 거야. 잠시 내가 개가 되는 거지. 저 사람들도 다 알아” 하면서 웃으셨습니다. 그 후에 식당에 가는 일이 많아지면서 doggy bag에 싸가는 것이 그리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눈치가 빠르지 못한 나는 미국 음식이야 싸간다지만 국물이 많은 한국 음식이야 싸갈 수 있으랴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오하이오 촌에서 뉴저지로 이사 오고 한국 음식점에 다니다가 보니까 한식도 싸갈 수 있는 거로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젊어서는 많이 먹었지만, 나이가 들어 먹는 양이 적어지자 나에게도 Doggy Bag이 아주 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음식점에서도 으레 싸주는 것으로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여럿이 모여 식사하고 끝날 때쯤 되면 남은 음식을 싸가느라고 식탁이 분주하게 되었고 이제는 Doggy Bag이라고 부르지 않고 Carried out Bag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 먹는 양이 줄어든 요즈음 식당에서 주는 음식은 양이 많습니다. 그래서 주는 음식을 다 먹을 수 없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물론 싸갈 수 없는 음식들, 냉면이나 국밥 같은 것을 싸갈 수 없지만, 애피타이저로 주문한 해물파전. 빈대떡, 갈비는 싸갈 수 있고 요새는 갈비탕도 담아주는 용기가 있어 조금도 불편하지 않게 담아줍니다. 저희 부부가 둘이서 식당에 갈 때는 미리 짜고 한 사람분으로 나누어 먹고 한 사람분은 싸달라고 했습니다. 항상 여자의 머리가 남자들보다 잘 돌아가고 똑똑합니다. 그래서 웬만한 일에는 여자가 지시하는 대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요새는 아내가 으레 싸달라고 하고 나는 딴청을 하고 못 본 체하기가 일수입니다. 그런데 요새는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떤 식당에 가서 식사를 주문하면 샐러드바에 가서 실컷 먹으라는 식당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애피타이저로 조금 먹고 본 음식을 먹는 데 여럿이 식당에 가면 여자들은 애피타이저로 배를 채우고 본 식사는 집으로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저는 수줍음이 많아 그러지 말자고 하고 본 음식을 먹고 나오지만 그럴 때마다 아내는 나를 마치도 바보 취급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나쁩니다. 오래전 한국에서 아주 돈이 많은 친구와 쌈밥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나오는 음식이 얼마나 많은지 나온 음식의 삼 분의 일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를 데리고 간 친구는 그야말로 억만장자였습니다. 그런데 부인이 가방에서 플라스틱 봉지를 꺼내더니 쌈, 마늘, 고추를 모두 담아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나는 공연히 얼굴이 뜨뜻해지고 그것을 어찌 해석해야 할는지 한참 고민했습니다. 종업원이 오니 그 친구 부인을 남는 것 없이 처분해주니 고맙지요 라고 도리어 공치사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물론 잔반을 처리해주는 것이 식당으로서 고마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주객이 전도될 정도로 싸서 오는 것을 볼 때 이제는 doggy Bag이 아니라 Human Bag이라고 이름을 고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용해 / 수필가삶의 뜨락에서 doggy bag 한국 음식점 doggy bag out bag